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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양저우 팔괴 오월지역의 그림에서 빼놓을 수 없는 화파가 또 하나 있다. 바로 '양주팔괴다. 양주팔괴는 청나라 중기에 양주지방에서 활약한 화가들을 통칭한다. 강소성 양주는 양자강과 경항운하가 교차하는 곳에 위치하고 있어, 육로와 수로 운송이 발달했다. 한나라 때에는 오의 수도였고, 수양제도 임시 수도로 삼았으며, 광릉이라는 명칭을 양주로 고쳤다. 


당나라 때에는 신라·아라비아·일본 상인들이 이곳을 무역의 중심지로 삼아 5,000여 명의 외국 상인들이 교역할 정도였다고 하니 당시 양주의 번성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신라의 최치원도 이곳에서 5년 동안 관리 생활을 한 바 있으며, 이탈리아의 마르코 폴로는 이곳을 '놀라운 땅(Wonder Land)'이라고 극찬하기도 했는바, 이 모두는 양주가 교통과 상업 자본이 발달한 지역이라는 특징 때문이다. 

 양주팔괴가 과연 누구누구를 지칭하느냐에 대해서는 이론이 많지만 대체로 나빙(羅聘, 1733~1799)·정섭(鄭燮, 1693~1765)· 금농(金農, 1687~1763)·이방응(李方膺, 1695~1755)·황신(黃愼, 1687~1770)·왕사신(汪士愼, 1686~1759)·이선(李鱓, 1686~1762)·민정(閔貞, 1730~1688)·고상(高翔, 1688~1753)·변수민(邊壽民, 1684~1752)·고봉한(高鳳翰, 1683~1748)·화암(華喦, 1682~1756)·진찬(陳撰, 1678~1758) 등을 지칭한다. 
양주팔괴 중 대표적인 인물은 정판교(鄭板橋)로, 이름은 섭(燮), 판교는 호이며, 강소성 흥화(興化) 사람이다. 1736년 진사에 급제해 벼슬길에 올랐으나, 권부의 미움을 사 파직됐고, 만년에는 양주에서 그림 장사를 했다. 서화에 뛰어났으며, 대나무 그림은 일가를 이룰 정도로 유명하다. 칼날 같은 대나무 잎과 깎은 듯 우뚝 솟은 바위의 형상으로 독특한 화풍을 이뤘는데, 정판교의 대나무 그림은 전통적 기법을 초월한 청신하면서도 강인한 기취(奇趣)를 담고 있다. 대나무 그리기(畵竹)에 대한 그의 화론(畵論) 역시 중국 회화사에서 중시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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